지난 주 우리 아이들이 쓴 시(2022/9/27~10/1)
작은도서관 소풍의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다 보니 이것 저것 일이 많습니다.
처음 계획으로는 아이들이 직접 쓴 손 글씨로 시집을 만들자고 출판사와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해서 첫 번째 시집처럼 폰트를 정해서 시집을 만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만 그 동안 자신들이 쓴 시 중에 아이들이 어떤 시가 시집에 올라가기를 원하는지는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주관적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시는 정말 많이 발전 했습니다.
은유와 반복, 의인법과 댓구법까지 아이들은 스스로 시를 쓰는 방법을 깨달아 시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 시 쓰기 수업을 할 때, 어느 분이 "무슨 시 수업이 이러냐, 계속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할거냐" 항의 아닌 항의를 했습니다.
화가 많이 났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시의 이론은 허망한 것이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이지 그것을 주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집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이 아이들의 시를 읽고 놀라기도 하고 대견스러워 했지만 아마도 이번 시집은 훨씬 더 성장한 아이들의 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수학과 영어가 중요하고 그래서 학원을 가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틀에 갇히고 그 틀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억누르게 됩니다.
아이들은 시 쓰기 시간을 오면 마음 껏 놀고 싶어 합니다.
놀면서 시 쓰기는 사실 공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의 중, 고등학교에서는 글을 쓰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습니다.
단 한 줄의 글,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을 때 비로서 논리적인 사고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도서관에 오는 소위 영재라는 친구도 학원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틀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잘 노는 것만큼 훌륭한 공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놀며 시 쓰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배
이로하(운산초 2)
과즙이 팡팡 터지는 배
아삭 아삭 냠냠
맛있는 배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배는
할아버지 배
코스모스
예쁜 색깔이
여러가지
잎은 여덟개
그래서 일까
그래서 일까
마음도 여러가지 일 거 같다
* 로하의 시는 시를 쓰는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커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맛있는 배를 보면서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나, 코스모스의 여러가지 색과 잎을 보면서 마음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로하의 시가 무궁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코스모스
이소윤(운산초 3)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
예쁘게 피어나는
코스모스
분홍, 노랑, 하양
예쁜 코스모스
아름다운 코스모스
* 소윤이는 요즘 시가 조금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시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 소윤이에게도 그런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를 쓰지 않는다면 정말 시를 쓸 수 없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 부모님들이 많은 격려를 하고 좋은 시를 더 많이 읽어 보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리한 소윤이가 금방 재미있는 시를 만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홍시
박온유(용당초 3)
홍시는 맛있다
그 중에서도
난 외숙모 별명인
홍시가 좋아
우리 외숙모는
홍시
민들레
민들레가
활짝 웃으며
길가에 피어난다
사람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혼자 꿋꿋하게
피어있다
외롭게 보이네
쓸쓸하게 보이네
언젠가 누군가
관심을 가져 주겠지
민들레야 민들레야
조금만 참으렴
누군가 관심을 가져 줄테지
* 온유의 시, 민들레를 읽으면서 온유를 다시 한 번 온유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마음에 담겨 있는 이 감성이 가슴을 적십니다.
마음을 울리는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코스모스
류은별(용산초 3)
아기 코스모스는
엄마 옆에 붙어서
싱글벙글
엄마 코스모스도 함께
싱글벙글
어디서 왔는지
귀여운 아기 바람도 함께
싱글벙글
내일도 오렴
아기 바람아
* 은별이는 이름처럼 참 시를 이쁘게 잘 쓰지요. 코스모스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은별이가 가진 감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잘 나타냅니다. 형식이나 내용 모두 나무랄데가 없는 시입니다.
은행나무
배예진(용산초 3)
걸어가다 밟으면
냄새가 나는 은행
다람쥐
다람쥐는 욕심쟁이
입에 한 가득 도토리를 넣고
집에 가져다 놓고
또 입에 한 가득 넣는
욕심쟁이 다람쥐
* 예진이의 시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람쥐를 욕심쟁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예진이의 시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좋은 시는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쓰레받기
송현우(용산초 3)
아직도 배가 고픈지
계속 혓바닥을 내민다
배가 부른지
토를 하고선
가만히 잠을 잔다
다시 배가 고프면
다시 맛있게
냠냠 쩝쩝
불
활활 타올라라
활활 타올라
뜨거운 불
불불불
앗 뜨거워
활활 타오르는 불
* 현우의 시 "쓰레받기"는 관찰에서 나온 반전의 묘미가 살아 있습니다. 쓰레받기를 사람처럼 표현하는 의인법을 사용해 마치 쓰레받기가 쓰레기를 담는 것을 밥을 먹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현우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발상을 지니고 있는 현우가 좋은 시를 쓸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책장
김유현(용산초 5)
책들의 아늑한 집
책들이 휴게소
책장도
따뜻하게 받아준다
해바라기
햇님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햇님만 봐도 되살아난다.
* 해바라기를 보는 유현이의 시선은 아주 날카롭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짝사랑 같은 감정 같은 것을 저는 유현이의 시에서 느꼈습니다. 멋을 부리기를 좋아하는 유현이의 시는 오히려 담백하고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지갑
서나래(백운초 5)
돈이 나오는 지갑
우리 아빠 지갑은
불량품인가 보다
아빠 지갑에선
돈이 나오지 않는다
* 나래가 뚝딱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나래에게는 많은 것들을 시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허투로 생각하지 않는 것, 나래의 큰 장점입니다.
시간
최준상(운산초 5)
시간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시간
지나면 지날 수록 할 수 없는게 생기는
시간
지나면 무서운 날도 오는
* 준상이의 시는 함께 조금 손을 보긴 했지만 준상이가 얼마나 큰 발전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는 좋은 시입니다.
해바라기
하은성(운산초 5)
해바라기는 가을의 황금
해바라기는 가을만 먹어서
사계절 투정한다
해바라기는 가을의 노란 태양
태양 같은 해바라기
* 은성이의 해바라기를 읽으면서 은성이는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 듯 배운 것을 금방 익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은유법을 설명한 날, 은성이는 해바라기를 가을의 황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약간의 서툰 면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좋은 시입니다.
연필과 지우개
송채린(백운초 4)
연필로 적다가
잘못 적으면
선을 쓱쓱 긋지
하지만 연필의 친구
지우개가 와서
쓱싹 지워 주지
연필과 지우개가
서로를 돕는 모습이
형제 같네
* 이번 채린이의 시에는 약간의 한계가 보입니다. 지난 번 시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시를 쓸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시에 있어서 좋은 생각을 담는 그릇은 표현의 방법이지요. 생각이 크지면 그릇도 그만큼 커야 하는 것이지요.
채린이가 형식을 뛰어 넘는 표현 방법을 알려면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시를 읽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